커피에 카다몬을 넣는 이유: 두 재료가 나눠 갖는 향

작은 포트에 커피를 끓이면서 카다몬 꼬투리 몇 개를 으깨 넣는 방식은 중동과 아프리카 뿔 지역이 수백 년째 이어 온 것인데, 갓 끓인 잔에서 피어오르는 향을 맡아 보면 커피와 향신료가 조금도 따로 놀지 않는다. 얹은 게 아니라 원래 한 잔 같다. 잘 끓인 카다몬 커피가 그렇게 읽히는 것은 카다몬이 커피를 둥글게 감싸는 동시에 향을 위로 끌어올려서인데, 지구 반대편에서 온 두 재료가 이만큼 매끄럽게 맞물리는 이유는 뭘까.
같은 향을 나눠 가진 사이
요리사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온 재료끼리도 한 짝처럼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감으로만 통하던 그 직관에 이제는 이름과 메커니즘이 붙었다.
지배적인 향 성분을 공유하는 식재료는 잘 어울린다고 여겨지며, 이는 서로 다른 요리를 잇는 데 쓰이는 원리다.1
향의 지문이 겹칠수록 입안에서 하나로 포개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카다몬은 따뜻하고 수지 같은 결에 은은한 시트러스가 감도는 향 짙은 향신료인데, 그 노트의 상당수가 로스팅한 커피에 이미 들어 있다. 향의 어휘를 나눠 쓰는 덕분에 카다몬은 커피에 끼어드는 향신료가 아니라 커피의 연장선처럼 읽힌다. 그런데 그 겹침은 애초에 어디서 생긴 걸까.
로스터 안에서 태어나는 향
생두는 코를 대 봐도 향이 거의 없다. 완성된 잔을 채우는 향의 대부분은 로스터 안에서, 열이 갈변 반응의 연쇄에 불을 붙이는 그 순간에 태어난다.
커피와 카카오 로스팅은 마이야르 반응과 캐러멜화에 의존해 복합적인 향을 형성한다.2
이 반응들이 수백 가지 휘발성 화합물을 쏟아내면서 커피 특유의 고소하고 달큰하고 스파이시한 깊이가 완성된다. 카다몬은 그 향 스펙트럼의 한쪽을 이미 공유하고 있어서, 넣으면 로스팅이 깔아 둔 노트를 부딪힘 없이 밀어 올린다. 관건은 양이다. 소량은 커피를 증폭시키지만 지나치면 균형이 뒤집혀 향신료가 주도권을 쥐어 버리니, 자기 잔의 적정선은 결국 혀로 찾는 수밖에 없다.
잔을 나란히 놓고 확인하기
아래 실험은 카다몬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조건을 전부 묶어 두는데, 맛의 차이가 로스팅이나 추출 세기가 아니라 페어링 자체에서 오게 만들려고 건 장치다. 시작은 늘 소량이다. 나중에 더 넣을 수는 있어도 이미 밴 향은 되돌리지 못한다.
- 커피를 한 번에 내려 같은 양으로 나눈다. 로스팅 정도, 분쇄도, 추출 세기를 모든 잔에서 똑같이 맞추기 위해서다.
- 그린 카다몬 꼬투리를 가볍게 으깨 오일을 터뜨린 뒤, 한 잔에는 적게, 다른 잔에는 중간 정도로 넣는다. 세 번째 잔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대조군으로 둔다.
- 타이밍을 비교하려면 추출 중에 넣는 잔과 추출 후에 넣는 잔을 따로 준비한다. 열과 접촉 시간에 따라 우러나는 향의 양이 달라진다.
- 모든 잔을 같은 시간, 같은 온도로 우린 뒤 카다몬 건더기를 걸러낸다. 특정 잔만 더 오래 추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 블라인드로 맛보며 향의 조화, 균형, 향신료가 과하게 튀지 않는지를 각각 점수로 매긴다.
- 커피의 로스팅 개성을 덮지 않으면서 조화가 가장 살아나는 양과 타이밍을 고른다. 그 잔을 다시 내려 한 모금 넘겨 보면, 향신료를 넣었다는 느낌 없이 커피가 한 뼘 넓어져 있다.
이 글의 근거
- 1. 공유된 향으로 페어링하기 · Flavor network and the principles of food pairing ↩
- 2. 로스팅이 커피와 카카오 향을 만든다 ↩
외부 링크가 없는 사실은 R&Dish가 검수한 코퍼스(교과서 수준의 식품과학)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