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탐산은 어느 식품에 사는가
감칠맛 나는 재료라고 부르는 것들을 한 줄에 세워 보면 의외로 좁은 지도가 그려진다. 바다에서 하나, 밭에서 하나, 숙성고에서 둘, 발효통에서 하나. 지도를 그리기 전에 이 지도가 무엇을 따라가는 지도인지부터 확인한다.
지도의 축
유리 글루탐산은 감칠맛이라는 기본 맛의 주된 원천이다.1
핵심은 유리라는 수식어다. 단백질 사슬에 묶인 글루탐산은 혀에 잡히지 않고, 사슬에서 풀려나 있는 것만 맛으로 읽힌다. 그래서 이 지도는 단백질이 많은 식품의 지도와 겹치지 않고, 글루탐산이 풀려나 있는 식품의 지도가 된다.
바다 쪽 좌표
곤부 다시마는 유리 글루탐산 농도가 유별나게 높아 100그램당 약 1,200~3,400밀리그램에 이르며, 이 때문에 다시에서 주된 글루탐산 공급원이 된다.2
지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물에 담그기만 해도 우러나는 것은 애초에 사슬에 묶이지 않은 유리 상태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밭 쪽 좌표
잘 익은 토마토는 유리 글루탐산의 상당한 식물성 공급원이다.3
잘 익은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숙성이 진행될수록 유리 글루탐산이 쌓이니, 토마토소스가 왜 서양 요리의 감칠맛 바탕 노릇을 하는지가 이 좌표에서 설명된다.
숙성고 쪽 좌표
숙성고에서는 시간이 글루탐산을 풀어 준다. 단백질을 잘게 쪼개는 효소들이 몇 달에서 몇 년에 걸쳐 일하면서, 묶여 있던 글루탐산이 유리 상태로 쌓인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유리 글루탐산 함량이 가장 높은 치즈 중 하나다.4
오래 숙성한 생햄은 유리 글루탐산이 축적되어 깊은 감칠맛을 낸다.5
오래 숙성한 치즈 겉에서 씹히는 알갱이, 생햄 단면의 흰 점이 모두 이 축적의 흔적이다. 숙성 식품이 값이 나가는 이유의 절반은 시간이 만든 이 화학이다.
발효통 쪽 좌표
피시 소스는 오랜 염장 발효 중 효소가 멸치 단백질을 분해하며 생성된 유리 글루탐산이 풍부하다.6
숙성고와 같은 원리를 발효가 더 빠르고 세게 돌린 경우다. 단백질 분해가 곧 글루탐산 방출이라는 등식은 간장, 된장, 젓갈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서, 발효 조미료 선반 전체가 사실상 이 지도의 한 대륙이다.
지도를 손에 쥐면 요리에서 감칠맛이 부족할 때 어느 방향으로 손을 뻗을지가 정해진다. 국물이면 바다 쪽, 소스면 밭 쪽, 마무리면 숙성고 쪽이 가깝다.
- 국물 요리에 깊이가 부족하면 다시마 한 조각을 먼저 시험한다. 지도의 최고봉부터 쓰는 셈이다.
- 고기 없는 소스나 찌개에는 잘 익은 토마토나 토마토 페이스트로 식물성 축을 채워 본다.
- 파스타나 수프의 마무리에 파르미지아노 껍질을 넣고 끓여 본다. 갈아 뿌리는 것과는 다른 층이 생긴다.
- 볶음이나 무침의 간을 소금 대신 피시 소스 몇 방울로 잡아 보고 차이를 비교한다.
- 생햄이나 숙성 치즈를 쓰는 날은 다른 감칠맛 재료를 줄여 본다. 지도의 좌표가 겹치면 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