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류가 시작되는 순간을 아는 법
초류를 흘려보내던 증류자가 어느 순간 받이통을 바꾼다. 그 순간이 왜 하필 지금인지가 증류의 실전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자로 잴 수 있는 계기와 코로 잡는 계기가 함께 쓰이는데, 먼저 그 순간에 무엇이 걸려 있는지부터 본다.
기다리던 구간
증류 중간 유분인 하트는 가장 깨끗한 에탄올과 가장 바람직한 향 성분을 담고 있다.1
너무 일찍 받기 시작하면 초류의 날카로움이 딸려 오고, 너무 늦게 시작하면 좋은 술을 버린 셈이 된다. 그래서 시작점 판단에는 계기가 필요하다. 첫 번째 계기는 향이다.
계기 하나, 향이 열린다
에스터는 발효와 숙성 중 산과 알코올이 반응해 형성되며, 술에 과일 향과 꽃 향을 준다.2
용매 기운이 빠지고 과일과 꽃 쪽 향이 잡히기 시작하는 지점이 관능으로 잡는 본류의 문턱이다. 증류자가 유출액을 계속 코에 대 보는 것도 어엿한 계측이다.
계기 둘, 도수가 내려간다
코와 나란히 쓰는 두 번째 계기는 숫자다. 유출액의 도수는 증류 내내 일정하지 않고, 그 궤적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를 말해 준다.
술의 알코올 함량은 액체 중 에탄올의 백분율인 부피 기준 알코올 도수로 측정된다.3
증류자는 알코올 비중계를 유출액에 띄워 두고 이 숫자가 미끄러지는 속도를 지켜본다. 향이 주관을 담당한다면 도수는 기록을 담당해서, 지난 배치와 같은 지점에서 끊는 재현성은 숫자 쪽에서 나온다.
계기 셋, 조건이 다르면 답도 다르다
같은 술덧이라도 증류 조건이 바뀌면 넘어오는 향의 구성 자체가 달라진다. 소주가 좋은 사례다.
한국 소주에서는 증류법이 향 프로파일을 좌우한다. 상압 증류는 곡물과 보리 뉘앙스를 띤 흙내와 효모취를 내고, 감압 진공 증류는 과일향과 단 향을 낸다.4
상압에서 본류다운 향과 감압에서 본류다운 향이 다르다는 뜻이고, 컷 포인트가 장비와 압력에 따라 다시 조율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의 집 레시피를 그대로 옮겨 쓸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판단을 돕는 오래된 손기술
술을 물로 희석하면 에탄올 농도가 낮아져 거친 콘제너의 지각이 부드러워진다.5
도수 높은 유출액은 알코올의 열감이 향을 가린다. 시음 잔에 물을 몇 방울 더하는 손기술은 그 가림막을 걷어 지금 넘어오는 향의 실체를 확인하는 방법이고, 컷 판단의 보조 계기로 오래 쓰여 왔다.
마시는 쪽에서는 이 세 계기를 거꾸로 읽으면 된다. 잔에서 과일 향이 깨끗하게 열리는 술은 향 계기를, 배치마다 균일한 술은 숫자 계기를, 프로파일이 뚜렷한 술은 조건 선택을 잘 다룬 집의 결과물이다.
- 화이트 스피릿을 시음할 때 첫 향에서 용매 기운과 과일 향의 비율을 가늠해 본다. 본류 시작점을 어디서 잡았는지의 흔적이다.
- 같은 술을 스트레이트와 물 몇 방울 섞은 잔으로 나란히 맛본다. 증류자가 스틸 옆에서 쓰는 판단법 그대로다.
- 소주나 쇼추 라벨에서 상압과 감압 표기를 찾아 향 프로파일과 맞춰 본다.
- 같은 증류소의 배치 다른 병을 비교해 본다. 균일할수록 숫자 계기가 촘촘한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