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류식 소주의 원리: 쌀과 누룩, 그리고 스틸

초록병 소주를 마시다 증류식 소주를 한 잔 받으면 같은 이름을 쓰는 술이 맞나 싶은데, 한쪽은 물을 타 만든 공장 술이고 다른 한쪽은 포트 스틸에서 쌀을 내린 술이라 결이 아예 다르다. 그 차이는 어디서 갈라질까. 증류식 소주의 원리는 살아 있는 발효와 조심스러운 증류, 딱 두 단계에 걸려 있고 완성된 술의 성격도 그 두 곳에서 함께 정해진다. 출발점은 알코올이 아니라 곡물과 곰팡이가 엉긴 덩어리, 누룩이다.
발효는 누룩이 한다
효모를 쌀 위에 그냥 뿌려 둔다고 술이 되지는 않는다. 효모는 전분을 곧바로 먹지 못하니 누군가 먼저 그 자물쇠를 열어 줘야 하는데, 수백 년째 한국의 부엌에서 그 열쇠 노릇을 해 온 것이 누룩이다.
한국 전통 발효제인 누룩은 곡물 전분을 당화하는 곰팡이, 효모, 세균을 지닌다.1
누룩 속 곰팡이가 전분을 당으로 쪼개 놓으면 함께 실려 온 효모가 그 당을 받아 알코올로 바꾸는데, 누룩의 일은 딱 거기까지다. 그 아래로는 전부 스틸의 몫이다.
전통 증류식 소주는 누룩으로 발효시킨 쌀을 증류해 만든다.2
거친 맛은 어디서 오나
발효가 에탄올만 남기고 얌전히 끝나면 좋겠지만, 효모는 제 살림을 하는 동안 부산물로 더 무겁고 덩치 큰 알코올 무리까지 함께 만들어 낸다.
퓨젤 알코올이라 불리는 고급 알코올은 효모의 아미노산 대사로 발효 중 생성되며 거칠고 용매 같은 맛을 낸다.3
그 무거운 성분 가운데 일부는 스틸을 통과해 증류액까지 따라 넘어오는데, 갓 내린 소주가 혀를 알알하게 긁을 때 가장 먼저 지목되는 용의자다. 다만 이는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귀속으로 남아 있다.
어린 증류식 쌀 소주의 거칠고 떫은 특성은 흔히 증류 중 넘어온 퓨젤 알코올과 콘제너 때문으로 여겨진다.4
같은 병에서 따른 술이 도수에 따라 딴판으로 읽히는 것도 여기에 걸려 있는데, 물을 타 도수를 낮추는 일은 증류하는 사람이 쥔 가장 오래된 지렛대다.
술을 물로 희석하면 에탄올 농도가 낮아져 거친 콘제너의 지각이 부드러워진다.5
만든 이처럼 맛보기
집에 스틸을 들일 필요는 없다. 가게에서 산 병 몇 개와 물 조금이면 발효와 컷이 혀 위에서 어떻게 갈라지는지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
- 희석한 초록병이 아니라 전통 증류식 소주를 고르고, 쌀과 누룩이 바탕인지 라벨을 읽는다.
- 먼저 그대로 향을 맡아 용매 같은 날카로움을 짚는다. 넘어온 퓨젤 알코올의 서명이다.
- 물을 몇 방울씩 더해 그때마다 맛보며, 도수가 내려갈수록 거친 끝이 눅는 걸 살핀다. 한 번에 부어 버리면 되돌릴 수 없으니 조금씩이 마음 편하다.
- 어린 병과 더 익은 병을 견주어, 시간과 재움이 거친 성격을 얼마나 덜어 내는지 느껴 본다.
- 거친 첫 향과 조이는 끝맛을 따로 적어 둔다. 서로 다른 단계를 가리키기 때문인데, 적어 둔 쪽지를 곁에 두고 한 모금 더 넘겨 보면 두 감각이 훨씬 또렷하게 갈린다.